미세먼지의 진실 2탄
-이번에는 지난 5일 서울의 일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가 135㎍/㎥까지 올랐던 날의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사상 최악'이라고 떠들던 그 날이죠.
-그 전에 다른 얘기를 좀 해볼게요.
우리 기상 기자들은 '사상 최X' 기록 찾기 경쟁에 아주 목을 메요.
작년 폭염 심할 때도 기온 올라갈 때마다 '사상 최악 폭염' 기사 먼저 쓰려고, 또 더 높은 기록 찾아내려고 아주 혈안이 됐답니다. 아니 뭐 대단한 기사를 쓴다고...
예를 들어 서울은 기상 관측을 1907년부터 시작했어요. 이미 112년의 관측 기록이 있죠. 이보다 나이 많은 국민이 몇 명이나 있나요? 그러니 '사상 최X' 표현을 쓰기에 충분해요.
-반면 파주는 2000년에 관측을 시작했네요. 이런 지역에서 이 지역 최고 기록을 확인했다 해도 '사상 최X' 표현을 쓰느냐?
안 그래요. "어멋! 이건 사상 최X이라 쓰긴 부끄러워. 안 쓸래" 합니다.(죄송요. 이건 좀 오바)
-왜 이런 얘길 꺼냈는고 하니 초미세먼지의 전국적인 관측 시작 시기가 2015년이예요. 고작 4년 조금 넘은 관측 기간을 두고 '사상 최악'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요? 뭐 말이야 '관측 사상 최악' 맞죠. 근데 이걸 '사상 최악'이라고 쓰면 국민들은 어떤 반응일까요? 그 날이 '내 생애 최악의 봄날'로 기록될 겁니다. 4살 어린 아이도 아닌데...
-물론 초미세먼지가 갈수록 악화하는 추세여서 관측 이전의 농도가 충분히 높았을 거란 확증이 있다면 이렇게 쓰는 것도 괜찮겠죠. 그런데 1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저희는 그나마 좀 공신력 있으면서 오래된 기록을 찾아보니 서울시는 2003년부터 초미세먼지 관측을 했어요. 그때부터 기록을 찾아본 결과 2003년 5월 22일에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139㎍/㎥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기록보다 더 높았어요. 올해가 최악이 아니란 말이죠. 16년 만의 고농도 미세먼지라고는 할 수 있겠습니다.
-저희가 전국 공식 관측 이후 자료를 안 쓰고 어찌보면 비공식인 서울시 자료를 쓴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의 2003년 5월의 초미세먼지 기록이 신뢰할 수 있는지 좀더 냉정히 따져보겠습니다.
-먼저 당시는 오염 물질이 아니라 황사 아니었나?
http://www.weather.go.kr/weather/asiandust/observday.jsp
기상청 황사관측일수 홈페이지입니다.
2003년 5월 서울의 황사 관측 일수는 0일입니다.
황사 아녜요.
-그렇다면 당시 초미세먼지 관측 농도를 믿을 수 있는가?
공식적이 관측 기록이 존재하는 미세먼지(PM10) 농도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http://cleanair.seoul.go.kr/air_pollution.htm?method=daily
서울시 대기환경정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3년 5월 22일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221㎍/㎥이었습니다. 겁나 높죠.
-황사가 아닌 시기에 초미세먼지 농도는 미세먼지 농도의 60~70% 정도를 나타냅니다. 당시 초미세먼지 농도인 139㎍/㎥은 미세먼지 농도의 약 63% 정도입니다.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수치로 판단됩니다. 뭐 이래도 못믿겠다 하시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사상 최악' 하시든지.
-서울시의 기록조차 존재하지 않는 2003년 전은 어땠을까요? 1편에서 봤듯이 환경 규제가 더 느슨했던 당시에는 농도가 더 높았을 거라고 추정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개별 학자들이 1980년대부터 관측했던 수치를 보면 실제로 더 높았고요.
-한 가지 더, 당시엔 지금처럼 미세먼지가 중금속 범벅이 아니었다고요?
대표적인 중금속인 서울시의 납 농도 그래프를 그림으로 첨부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지금보다 10배 이상 높았고요. 2000년대 초반에도 거의 2배 수준이었습니다. 납 말고 크롬, 니켈, 카드뮴 등 다른 주요 중금속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기사에 '사상 최악'이라는 제목이 붙는 것이 몹시 불편합니다.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를 만든 건 중국도, 석탄화력발전소도, 경유차도 아닌 언론입니다. 언론이 만든 허상입니다. 그리고 그 허상에 온 나라가 뒤집어졌습니다. 많은 국민들을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아우성에 정부는 이상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