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의 진실 8탄
-중국발 미세먼지에 관한 여러 기사를 보면 기자가 끝에 꼭 한 줄 덧붙이는 멘트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넘어오는 게 이렇게 많으니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중국 정부에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등의 멘트입니다. 중국발 미세먼지를 장황하게 떠들었는데 끝에 뭔가 대책이 없으면 기사 완결성이 떨어지는 것 같으니 한 줄 끼워 넣는 멘트입니다. 말이야 쉽지만, 만약 그게 실효성이 없거나 실현 가능성이 없다면 정말 무책임한 멘트겠죠. 시청자들에게 희망 고문만 시키는 셈이니까요.
-저 역시도 그런 고민으로 국제법 관련한 내용을 취재하게 됐습니다. 취재하며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내용을 담아볼까 합니다. 물론 저는 ‘법알못’입니다. 몇 번의 취재만으로 충분히 내용을 숙지한 것도 아니기에 참고했던 자료도 함께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소병천 교수님의 논문 ‘국외 발생 미세먼지 관련 국제법적 분석 및 대응방안’,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 ‘월경성 대기오염물질 관리를 위한 단계별 대응방안 연구’, 이외에 과거 국가 간 환경 오염 분쟁 사례를 정리한 여러 보고서를 살펴봤습니다.
-앞선 글의 비유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앞집 똥이 넘어오지 않게 강제하려면 관련 법이 있어야겠죠. 만약 그러한 법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앞집에 찾아가 책임지라고 ‘항의’하면 도리어 사생활 침해로 신고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겠죠. 중국에 항의하라는 청원이 20만 명이 넘지만, 정부 차원에서 밑도 끝도 없이 중국보고 줄이라고 하는 것은 주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속은 시원하게 해줄 수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지, 또 잃는 건 무엇일지 판단하는 게 우선돼야겠죠.
-그래도 다행히 이 동네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습니다. 자기 집의 더러운 것들이 남의 집에 해를 끼치지는 말아야 한다는 아름다운 전통이죠. 국제 사회에도 그런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1972년 스톡홀름원칙 21의 ‘no harm rule’, 즉 자국의 오염 물질이 타국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책임의 원칙입니다. 물론 이 원칙이 그 자체로 강제력 있는 수단은 아닙니다. 이를 근거로 나온 협약 등이 체결된 뒤에야 구체적인 효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유럽 국가 간에 맺은 다자간협약(CLRTAP), 미국-캐나다 간의 대기 질 협정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근 인도네시아-싱가포르 간의 연무 분쟁도 국내에서 많이 참고되고 있는데 여기의 배경에도 ASEAN 협정이 있습니다.
-그럼 중국과 빨리 협약을 맺으면 되는 거 아니냐 하겠죠?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합니다. 아니, 절대적입니다. 가령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한 파리 협약과 비교해 볼까요?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 생존 시간(체류 시간)이 매우 길어서 어느 곳에서 배출되든 대기 중에 고루 섞여 전 지구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후변화는 전 인류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에 진통은 있었지만,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하는 협약 체결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미세먼지는 성격이 다릅니다. 대기 중 체류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인접 국가 사이의 문제로 한정됩니다. 한중 간의 문제에 국제 사회가 굳이 관심을 두지 않겠죠. 철저히 당사국 간의 문제로 남게 됩니다.
그럼 유럽 등 다른 나라의 사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수십 년간의 협력 연구를 통해 증거를 축적하고, 당사국 간의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 등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입니다. 한중 간에도 가능할까요? 협력 연구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고, 설령 증거를 축적한 뒤라도 협약 체결을 목표로 한다면 난관이 많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양국 간 힘의 논리도 그렇거니와 최대 교역국이라는 경제적인 면, 지정학적 관계 등 따져볼 게 많겠죠.
-설령 협약이 체결돼도 현재 중국의 배출 저감 노력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가 얻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협약이 일방적인 요구가 아닌 이상 우리보다 중국이 배출 저감을 위해 훨씬 노력하는 상황에서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결국, 협약 체결 등 강제력 있는 외교적 조치를 목표로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대부분 전문가가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습니다. 시도한다고 하더라도 한중만이 아닌 주변국을 끌어들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특별한 솔루션이 없는데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실현 가능성은 따지지 않고 많은 분이 중국발 해결에 목메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중국발이 50% 정도더라도 이것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고, 현재 국제법상 실현 가능성조차 불투명합니다. 물론 그 시기를 앞당기고 가능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중요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협력 연구를 보다 강화하고, 배출 저감에 초점을 맞춰 주도적으로 이끌려는 시도도 필요할 겁니다. 또 중국에 관측소를 설치하거나 관측 자료 등을 공유해 예보 정확도를 높이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죠. 그런데 정말 미세먼지를 줄이는 게 목표라면 보다 쉬운 길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노와 혐오가 목표는 아니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