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따로 살 땐 그거 문자 그대로의 할아버지, 할머니였지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다.
하지만 두 분과 같이 생활하는 요즘은 다르다.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두 분과 대화를 하거나 두 분의 대화를 엿듣곤 하는데 그 시간이 종종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특히, 두 분이 대화하는 방식에서 말이다.
1.
매번 같은 사람과 같은 이유로, 그리고 같은 말을 하며 싸우는게 대부분의 사람이다. 살다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개선될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사람들은 늘 말한다. 화를 내고 사과를 하고, 모든 걸 털어놓아봐도 결국 평행선을 달리는, 그런 관계 말이다.
물론,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냥 피하고 무시하는 게 답이지만, 문제는 그런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 때 벌어진다. 부모나 친구, 연인처럼 그저 피할 수만은 없는 관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우린 이렇게 행동한다.
'어차피 말해도 안바껴', 차라리 내가 포기하는게 나아'라며 더이상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이럴거면 차라리 그만하자'며 아예 관계를 끊어버린다.
소중한 사람과의 싸움이 큰 싸움으로, 또는 계속해서 지속되는 이유는 '도대체 어떻게, 왜 내 마음을 몰라줘?라는 감정과 함께 내 상황이 공감받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힘이 들고 서운한데 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너무 태연한거다. '그거 하나 해주는게 그렇게 힘이 드나?', '어떻게 매번 자기 생각만 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2.
문제는 항상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지적'뿐이라는거다. 정작 본심은 한쪽에 치워두고 비난만 주고 받는 식의 싸움은 서로의 마음만 상하게 할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냥 솔직하게 말할까', '왜 또 그랬을까?'하는 걸 보면 우린 이미 알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매번 후회한다.
그럼에도 솔직할 수 없는, 아니 솔직하기 싫은 이유는 내 앞에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이렇게 끙끙 앓고 있다는게 너무 자존심 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내가 두 분에게 배운 정말 소중한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나의 이런 부끄러운 마음조차 드러낼 수 있는 관계란 거다.
자존심 상할 수도 있고, 부끄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털어놔야 한다.
"나는 사실 당신의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고, 의지할 곳이 필요해"라고 말이다.
소중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는 논리적인 지적이나 합리적인 비판이 아닌 솔직한 고백, 이것 하나만으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