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의 금융결제망에 핀테크 기업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기로 했다. 금융결제망은 은행들만 들어가서 거래할 수 있는 일종의 회원제 클럽같은 거라서 그곳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되면 본질적으로 "아무나 은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소비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핀테크는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지만 그 본질은 A의 주머니에서 B의 주머니로 돈을 옮기는 방법을 보다 저렴하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내는 것이다. 핀테크 기업들이 이런 방법을 고민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항상 "A은행에서 B은행으로 돈을 옮긴다"는 절차가 그 중앙에 있다. 우리는 여윳돈을 은행 계좌에 넣어놓고 살기 때문에 이 절차를 마주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기존의 은행 송금에는 늘 수수료 몇백원이 반드시 발생하다보니 과거의 방식보다 더 저렴하며 혁신적인 방법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려웠다. 토스같은 유명한 핀테크 업체들도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고객들의 수수료를 대납해주며 버티는 '비혁신적인'방법으로 서비스를 키워갔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계좌간 송금이라는 결제의 핵심 인프라(금융결제망)를 소수의 은행들이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규제완화로 인해 앞으로의 금융결제망을 누구나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에 따라 수수료가 싼 다양한 송금 결제 서비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그 반대급부로 은행간 송금의 보안과 사고의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세상의 공짜는 없으니까 말이다.
일단, 금융결제망을 자세히 살표보면 다음과 같다.
A은행 계좌를 사용하는 a가 B은행 계좌를 쓰는 b에게 10만원을 송금하면 그 순간 A은행과 B은행 사이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고 간다. "B은행이죠? 여기 A은행인데요. B은행 b손님 계좌로 지금 10만원 들어갔습니다. b손님 계좌에 10만원 넣어주세요." 그런데 실제로 A은행에서 B은행으로 돈이 움직이는 것은 그 순간이 아니라 그날 자정 무렵이다. 손님들이 송금을 할때마다 은행들 사이에서 돈이 오가는 게 아니라 그냥 "나중에 송금할게요"라는 메시지만 오가고 실제 돈은 나중에 한꺼번에 모아놨다가 그날 밤 정산을 하는거다. 이렇게 하려면 A은행과 B은행은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 B은행은 A은행의 말만 믿고 고객 b의 통장에 은행 돈(진짜 돈) 10만원을 보내는 셈이니까 말이다. 바로 이 시스템이 '금융결제망'이다. 이 금융결제망에는 당연히 서로 외상거래를 할 수 있을만큼 믿을만한 금융회사들만 끼워주고 그것도 못 미더워서 '입회비'라는 이름의 수백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받는다. 이런 거액의 보증금을 받았던 이유는 이론적으로는 A은행이 나쁜 마음을 먹고 다음과 같은 사고를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은행의 결제망을 조작할 수 있는 A은행 은행장 a는 B은행에다 "B은행에 있는 A은행 은행장 친척의 계좌로 A은행 고객들 수백명이 수억원씩 송금했으니 일단 그 친척의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요청할 수 있다. 실제 A은행에서 B은행으로 돈이 움직이는 건 그날 밤 자정무렵 은행간 정산이 실시되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이에 ATM 등을 통해 돈을 인출해서 사라지면 막을 방법이 정말 쉽지 않았던거다.
은행들은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은행 직원들끼리도 서로 확인을 해야 송금이 되는 식으로 여러 단계를 만들어 공모를 해야만 사고를 칠 수 있게 해놨다. 그리고 은행들은 그런 사고 방지 시스템에서 필요한 비용을 고객들에게 비싼 송금수수료를 받아서 충당했다.(은행들은 고객들에게 송금수수료를 받지만 은행들은 금융결제망 이용료를 따로 내지 않는다. 연말에 금융결제망 운영에 소요된 비용을 정산해서 그걸 은행별로 나눠서 부담할 뿐이다. 그 차액이 은행들의 수수료 수익이다)
토스나 카카오페이같은 핀테크 기업들은 고객들의 송금 서비스를 위해서는 금융결제망 회원권이 있는 은행들에게 부탁해서 송금 심부름을 해달라고 요청해야 했고 그 댓가는 은행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싼 수수료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핀테크 업체들이 원하기만 하면 금융결제망에 직접 참가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혁신적인 송금 결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부가 원하는 것도 그런 결과겠지만 아무나 들어오는 금융결제망에서는 앞서 언급한 금융사고가 날 가능성도 더 커진다. 어제 막 창업한 핀테크 기업들도 금융결제망에 들어올 수 있게 되니 위험이 커지겠지만 금융사고를 막는다고 그 입장을 또 다시 제한하면 은행만 들어갈 수 있던 과거 구조와 다를 게 없는 폐쇄망이 되는 딜레마가 있다.
이렇게 금융결제망이 개방되면 은행들에게 수수료를 비싸게 주면서 적자를 감수하며 고객들을 모으던 토스나 카카오페이같은 기존 핀테크 기업들이 수혜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될지는 의문이다. 은행들과의 협조망을 수년에 걸쳐 구축한 토스의 인프라가 갖는 진입장볍의 가치가 사라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제 토스같은 기업을 창업하면 토스가 3년 이상 걸렸던 은행들과의 협조체제를 일주일이면 자동으로 갖추게 된다.) 그러나 핀테크 기업들은 이제 고객 모으기에만 성공하면 다르지 않은 지위를 갖게 된다. 계좌를 만들어서 예금을 받을 수도 있게 되고 그 한도도 계속 키워줄 예정이다.(전세금이나 아파트 잔금송금도 가능하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 핀테크 기업들이 사실상 예금은행이 되는거다. 물론 그 돈을 대출해줄 수는 없지만 이자를 많이 주는 금융회사에 재예금, 재예치 또는 금융상품에 투자해서 생기는 이익을 고객들과 나눌 수 있다.
고객들이 맡기는 돈이 늘어나면 그 돈을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지금이야 고객이 모이면서 기업가치가 커지는 재미에 굳이 그 돈을 위험하게 굴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핀테크 기업들이 늘어나고 그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핀테크가 그다지 새롭지 않은 사업 영역이 되면 고객들을 모으기 위해 '이자 많이 주기' 경쟁이 시작될 거다. 일례로 저축은행들이 위험한 대출에 손댔다가 손실을 입고 무너진 것은 그런 과정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감시 감독이 쉽지도 않다. 실제로 그 돈이 어디에 투자되었는지는 금감원 직원이 현장에 가도 파악이 어렵다.
규제완화를 통해 신 사업을 밀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반면 이런 그림자들은 늘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규제도 하면서 혁신도 하는 이상적인 묘수는 현실에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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