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에서 적대적인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닉슨 대통령 이후 갈등보다는 협력을 중시했다. 1964년 중국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1967년 수소폭탄 실험까지 성공했을 때 미국은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1979년에는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당시 미국의 대외전략을 담당했던 헨리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하고 소련의 팽창을 막는 등 다원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중국을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봤다.
중국은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후 개혁개방의 길을 걸으면서 기존 신흥공업국들과는 다른 '중국식 모델'을 정립하고 미국과는 거리를 뒀다. 중국식 모델의 특징은 사유재산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차관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토지와 자본 등 생산수단의 사유재산제는 인정하지 않고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중국은 국유기업을 설립하고, 국유기업이 국가의 계획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느 ㄴ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또 중국의 인구와 시장규모를 내세워 외국기업들이 국유기업과 합작기업을 설립하도록 유도하고, 이 과정에서 해외자본의 지분율을 49% 이상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사유재산제의 유입을 차단했다. 대부분의 신흥국들이 경제개발과정에서 외국자본에 예속되고 잦은 외환위기를 겪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은 것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본격적으로 경계감을 드러낸 것은 2011년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이 주장한 '피봇 투 아시아' 전략에서 시작된다. 당시 힐러리 국무장관이 잡지에 기고한 글을 보면 '떠오르는 중국과 상호 안보 및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며, 미군의 아시아 주둔을 늘리고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기야한다'는 것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미국이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정책으로 봤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추진되고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첨예한 논쟁거리가 됐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이 전략의 일환이었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 규모를 비교해보면, 미국 달러화를 기준으로는 이때 중국의 GDP가 미국의 50%를 넘어섰고, IMF의 구매력평가를 기준으로는 이미 중국의 GDP가 미국을 넘어섰던 시점이다. 달러화와 구매력평가는 물가를 반영하느냐의 차이다. 가령 미국에서 연봉 5만 달러로 누릴 수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한 생활수준을 중국에서는 3만 5000위완으로 누릴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환율이 1달러에 7위안이라면 5만 달러는 35만 위안이다. 달러화로 보면 3만 5000위안은 5만 달러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양국의 물가 차이를 반영한 생활수준으로 보면 3만 5000위안은 5만 달러와 같은 값이다. 이 예를 GDP로 바꿔 말하면 중국의 GDP는 달러화로 볼 때 미국의 10분의 1이지만 구매력평가로 보면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IMF 자료를 보면 달러화 기준으로 중국 경제는 미국의 61% 규모이고, 구매력평가를 기준으로 하면 120%로 이미 경제 규모면에서 미국을 앞섰다고 애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매력평가 기준으로 경제력 규모를 비교하는 것은 후생경제학자와 국가 간 주거이동이 자유로운 극히 일부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어서, 중국의 경제 규모를 미국의 61%라고 얘기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미국의 경제 헤게모니에 도전할 정도로 커졌고, 이미 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중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냈는데, 당선되고 난 이후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백악관에 국가무역위원회를 신설하고 초대 위원장에 피터 나바로교수를 임명한 것은 중국과 일전을 치르겠다는 선전포고로 보였다. 나바로 교수는 중국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공공연히 드러낸 인물이다. 그는 중국 문제를 무역적자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미국에서 번 돈으로 첨단무기를 만들어 '미국을 죽이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주의자인 게리 콘 골드만삭스 사장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위원장으로 임명하고 나바로 교수를 무역 제조업정책 국장으로 한 단계 강등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을 원한다는 멧지도 같이 보냈다. 게리 콘 위원장은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2017년 중국은 위안화를 절상하고 두 나라 정상이 상대국을 국빈 방문하는 등 성과를 내는 듯 했다.
그러나 2017년 말 게리콘 위원장이 백악관을 떠나고 난 후에 피터 나바로 국장이 다시 전면에 나서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는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국이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미국 내에서 중국을 견제해야겠다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의회가 나서서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에 들어갔다. 이후 양국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고, 서로 보복관세를 주고 받으며 대립각을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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