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는 비즈니스커리어(BC) 직군 안 뽑나요?”
지난 3월 1일 자산 규모 일본 3위인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매년 채용해온 BC 직군에 대한 설명을 모집 공고에서 찾아볼 수 없던 때문이다. BC직은 은행의 본지점에서 창구 업무를 담당하는 직군이다. 업무·근무지 등에 제한을 두지 않는 종합직과 BC직은 SMBC 채용의 양대 축이었다. 급여 상승폭도 높지 않고 승진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고향이나 현 거주지를 떠나고 싶지 않은 경우나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는 직원들이 택하는 직군이었다. SMBC는 노사협의를 거쳐 2020년부터 신입사원뿐 아니라 아예 기존 직원에 대해서도 종합직과 BC직 구분을 없애기로 했다. 현재 BC직은 전체 직원의 40% 수준인 1만1000명이다. SMBC 측은 “전 직원이 더 많은 업무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서 BC직을 통합키로 했다”고 밝혔다.
#2. 도쿄역 북쪽에 위치한 미즈호은행 간다역점. 이곳을 찾은 고객을 맞는 이는 2명의 중년 직원이다. 개인 고객에게 처리 희망 업무 내용을 묻고 대기 번호를 챙겨주는 것이 주 업무다. 개인 고객 창구에 5명 직원이 일하는 것을 생각하면 접수에 상당한 인력이 배치된 셈이다. 하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일본 금융기관 디지털화가 늦었다지만 최근 들어 인터넷만으로 볼 수 있는 은행 업무가 늘어나면서 손님도 줄고 있다. 지난 3월 5일 업무 마감(오후 3시)을 한 시간 앞둔 ‘피크타임’에도 이 지점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고객은 고작 5명뿐이었다.
은행 직원 입장에서는 악재가 겹치고 있다. 금융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지점을 찾는 고객 자체가 줄었다. SMBC만 해도 10년 사이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이 30%가량 감소했다.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 기술로 기계가 대체하는 업무도 늘고 있다. 그간 ‘최상의 고객 서비스 제공’을 이유로 직원을 늘려왔던 은행 입장에서는 인력이 넘쳐나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을 내걸고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워온 상황까지 겹치면서 단순 업무 전담인력 필요성은 더 줄어들었다.
▶창구직원 등 단순업무 직군 ‘울상’
구조조정 칼바람에 노조도 소극적
일본 주요 은행이 잇따라 인사 관련 정책 조정에 나서고 있다.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MUFG)은 정보기술(IT) 활용을 통해 2023년까지 국내 직원 30%에 해당하는 9500여명분의 업무량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2위 은행 미즈호의 경우 2026년까지 AI 기술 도입으로 전체 직원 업무량의 3분의 1가량을 축소한다는 목표다. 업무가 사라진 직원에게 영업 등을 강화시킨다는 계획을 내놓고는 있지만 사실상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AI 기술 발전이 일자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일본 금융권에서는 이미 현실로 닥쳐온 셈이다. 기술 발전이 더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단순 업무만으로는 더 이상 직장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지만 노조가 적극 대응에 나서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핀테크 확산을 비롯해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진행되는 업계 구조조정 여파 때문이다. 대형 은행에 비해 취약한 지방 은행의 경우에는 2017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연간 흑자를 기록한 곳이 전체 106곳 중 절반도 안 되는 52곳에 그쳤다. 23곳은 5년 연속 적자다.
전 세계 금융에 불어닥치는 구조조정 바람에서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올 들어 한국에서 대형 은행, 보험사 등 금융사 노사 갈등이 격화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한 금융회사 노조는 파업 등 기존 방식대로 대응에 나섰다가 오히려 역풍에 직면하기도 했다. 은행 외 다른 업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일본 금융기관 변화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한국 직장인과 노조가 시대 변화에 잘 대비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때다.
참고: 매경이코노미 제1999호 (2019.03.13~2019.03.19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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