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다. 4인 성인 가족이라면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연간 소득이 12달러라는 뜻이다. 그런데 주변에는 그렇게 많은 소득을 올리는 가정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었다는데 피부에 와닿지 않을까?
1. 일단,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게 정상이다.
2017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9745달러였다. 지난해에는 3만 1349달러로 5.4% 늘었다. 원래 소득은 이렇게 조금씩 늘어난다. 소득의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뀌었다고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길리 없다.
2. 1인당 국민소득은 환율 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지난해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서며 전년대비 5% 가량 늘어난 것은 실제 소득이 늘어서라기보다 환율 변화로 인한 영향이 더 크다. 실제로 2017년에는 1달러가 1130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달러 1100원이었다.(즉, 원화의 가치가 좀 더 높아졌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똑같은 소득이었더라도 달러로 환산한 국민소득은 3% 정도 전년대비 더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환율(달러 약세 원화 강세)에 따른 소득 변화는 우리를 별로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환율 변화로 인한 소득 증가가 우리에게 별 감흥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사다 쓰는 수입품의 대부분이 원자재이기 때문이다.
원화의 가치가 올라가면 똑같은 돈을 주더라도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화장품 가전제품 등을 수입해서 더 즐겁게 소비할 수 있다. 그게 우리가 소득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 대개 국제유가도 따라서 올라간다. 실제로 2017년의 평균 유가는 배럴당 50달러였지만 2018년에는 배럴당 60달러를 흘쩍 넘겼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원화 가치가 오르는 시기는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달러가 약세인 시기는 세계경기가 상대적으로 좋을 때여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도 오르는 경향이 강해서이다.
달러로 환산한 국민소득이 올라가더라도 석유를 더 비싸게 사와야 하면 우리 국민들의 주머니에 남는 달러는 더 적어진다.
3. 피부에 와닿을려면 우리가 '직접적으로' 행복해야 한다.
소득이 오른 후에 우리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체감하려면 그 오른 소득이 우리를 '기쁘게' 해줘야 한다. 쉽게 말하면 돈 쓰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럴려면 생필품을 구매하는 느낌보다 사치품을 구매하는 느낌이 좋아야 하고 더 비중있게 소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소득이 늘어도 원자재를 비싸게 사오는데 쓰니 피부로 느껴지는 소득 변화가 별로 크지 않다. 1인당 4000유로나 되는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 '행복하다'라는 감정이 생기지만, 배럴당 70달러나 되는 석유를 많이 가진다고 해서 뿌듯하진 않기 때문이다.
소득증가가 정말 피부에 와닿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득보다 지출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사교육비, 주택구입비, 이자, 세금, 의료비, 저축 등 지출이 늘어나 소득이 줄어들면 아무리 소득이 늘었어도 우린 행복하지 않는다. 특히 미래가 불안하면 현재의 소득을 '생필품'에만 쓰게 만든다. 행복을 위한 지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4. 소득이 '빨리' 혹은 '폭발적'으로 늘지 않으면 와닿지 않는다.
1억원짜리 차를 사면 대단히 기쁘지만 3년 후에 비슷한 차를 한 번 더 사면 기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행복한 지출도 긴 시간을 가지고 이뤄진다면 그 효용은 급격히 하락한다.
프랑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달러다. 그러나 그 나라 국민들도 역시 고소득을 체감하지 못한다며 오히려 삶이 퍽퍽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시위를 한다. 5만 달러가 된다고 해서 달라질까? 우리는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의 눈높이는 더 빨리 높아진다.
5. 1인당 3만 달러는 개인의 소득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라는 계산은 우리나라 전체 국민소득을 인구로 나눠서 나온 수치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국민소득에는 삼성전자나 포스코, 현대차가 회사의 이름을 내걸고 벌어들인 소득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있따.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10만명의 직원이 있는데 작년에 44조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직원 1인당 4억 4천만원의 이익을 벌어들인 셈이지만 그걸 전부 동등하게 직원들에게 나눠주지 않는다.
기업들이 벌어들인 소득은 그냥 기업의 주머니에 남아있기 때문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라도 실제 개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소득은 3분의 2정도인 약 2만 달러에 불과하다(여기서 3분의 2는 노동소득분배율이라 한다)
5. 소득의 분배가 얼마나 잘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1인당 2만달러라도 4인 가족이면 8만달러이고 그러면 약 9000만원인데 그 정도 소득을 버는 국민들이 정말 '평균적인' 국민이라는 말이냐고 질문한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렇다'이다.(세전)
그러나 상당수의 4인 가구는 가정의 소득이 9천만원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 10가구 중에 1가구의 소득이 100억원이고 나머지 9가구의 평균 소득이 1억원이면 그 10가구의 평균 소득은 약 2억원이다. 이러면 10가구 중에 9가구가 '체감할 수 없는 통계'라고 말할거다.
우리나라의 중간 소득 가구(소득 상위 40~60%에 속하는 4인 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약 5500만원 정도다. 우리나라의 소득 분배가 공고루 잘 되었다면 그 중간 소득 4인 가구의 연평균 소득이 9000만원쯤 됐을거다.
그러나 '국민 전체가 번 돈을 누구나 골고루 나눠갖는 것'은 현실에서 나타나기 어렵다. 누구나 돈 버는 능력이 다르므로 소득이 차별화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정부가 중간에서 세금을 걷어 그 실질 격차를 줄여나가는 게 필요하다.
문제는 어느 정도로 세금을 걷는 것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면서도 고소득층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거나 불만을 갖게 하지 않을 적절한 지점인지 아무도 모른다는거다.
경제가 성장하는 원동력은 사람들의 지출 욕구를 자극하는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거다. 그러나 이런 혁신은 고소득층으로 가야 일어나는 일이다.(고소득자만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 혁신을 해내는 사람이 고소득자가 된다는 뜻이다. 물론, 이 혁신을 하지 않고도 고소득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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