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에 의한 맹목적인 믿음'이야말로 경계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 구절을 신조삼아 나는 어떤 정보나 주장을 진영논리로 맹신하지 않고 사실을 확인한 후에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1.
그제부터 우리들의 타임라인을 달구는 것은 월드컵이 가장 많았지만 두번째로 따라온 것이 제주도로 입국한 예맨인들의 난민신청 관련기사와 그것을 막아 달라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의견이었다.
내 주위에는 나와 비슷한 성향이 많은지라 대체로 '인도적 측면의 난민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내용과 '무슬람 난민을 받지 말아 달라'는 국민 청원의 야만성에 대한 분노 정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상해 임시정부도 결국 난민이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보였다. 대체로 그런 주장은 진보성향의 정치가 혹은 활동가들의 글을 통해 시작되어 여기저기 공유되는 중이다.
나는 그들의 주장에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에 대해 몇가지 반론하고자 한다.
2.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난민이란 전쟁이나 철권통치 혹은 정치나 종교적인 억압을 피해 안전한 제3국으로 도피하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또한, 그 난민의 대상들은 대체로 어린이와 노인, 여성들 같은 사회적 약자를 상상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 직후의 보트피플처럼.
그런데 이번에 제주도로 입국한 예맨인들은 남성이 504명, 여성은 불과 45명이다. 91%정도가 남성인데 그중 20대 남성이 307명, 30대 남성이 142명, 40대 이상 남성은 41명, 18세 이하 미성년자 남성은 14명이다.
이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난민과 거리가 먼데 사실 이런 경우라면 인구가 매우 부족해서 난민을 가장 잘 받는 국가로 알려진 캐나다에서도 허락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3.
게다가 그들은 말레이시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 제주도는 전 세계에서 11개국을 제외하고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곳이다. 난민이 무슨 돈이 있어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을까? 이 또한 우리 상상과는 다르다.
현재로서 추측은 예맨과 제주도에 취업브로커가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정황이다. 제주도를 벗어나면 바로 불법 밀입국이 되는 것이고 실제 이러한 시도는 중국의 불법 밀입국 브로커들도 많이 사용하는 루트이기도 하다. 제주도로 들어와서 내륙으로 이동하는 동선 말이다.
4.
하지만 한국은 결코 난민에 관대한 국가가 아니다. 탈북자 문제로 국제법에 맞추어 법률을 만들고 공표했지만 실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6년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1.54%에 불과하다. 이중 결혼과 행정소송 승소로 인정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순전히 법무부 단계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전체 심사를 받은 6,340명 중에 0.42%정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매우 '빡세다' 때문에 이번에 제주도로 입국한 예맨인들은 대부분 추방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다만, 난민 지위의 심사기간 동안 한국에서 임시로 일할 수는 있다. 여기에 난민 불가 판정에 불복해서 행정소송을 걸고 재심 신청하면 그게 진행되는 2~3년 동안은 체류 및 노동허가를 받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일을 한다면 '결국 이득'이라고 판단해서 들어왔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여기까진 뭐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 있다.
5.
그런데 '따져보면 별 일 아닌 문제'를 언론이 적극적으로 다루고 키운다는게 문제다.
특히, 일자리 문제에 민감한 현 사회 분위기에서 제노포비아를 적극적으로 불러 일으키는 기사가 대량으로 발행되었다. 여기에 유럽의 무슬림 난민들이 일으킨 사건과 사고 사례와 유럽내 무슬림 인구 증가율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기사까지 나오니 사람들은 두려워졌다.
언론이 의도한 두려움이다.
무슬림은 여성들을 함부로 대하고, 한국인들도 부족한 일자리를 무슬림들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자극하는 기사가 나오니 청와대 청원이 등장한 것이다. 빠른 속도로 서명자가 늘어난 이유는 흔히 말하는 '이슬람 혐오'가 아니라 언론이 두려움을 자극해서 생긴 현상에 가깝다.
내 생각은 그렇다.
6.
이런 훌륭한 떡밥에는 당연히 진보를 표방하는 활동가(네티즌)들이 대거 참전하게 된다. 인도주의 측면에서 난민은 받아야 하고 청와대에 이번 예맨 난민을 받지 말라는 청원을 한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국민성(무지함, 야만성)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다. '상해임시정부도 난민이었다'는 한국민 입장에서는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주장까지 하면서 말이다.
온라인이 더 뜨거워졋다.
내 개인적인 의견은 앞뒤 맥락없이 '정의로운 말'만 하기란 매우 쉽다. 책임을 지지 않는 정의로운 말이란 얼마나 편한 말인가.
맨 윗줄에 적히 그 문장을 보기 전까진 내가 그러했다. 반성한다.
7.
이번 예맨 입국자들에 대한 난민 결정은 법무부가 하는 것인데 모두 추방당할 가능성이 높고, 정황상 그들은 난민이라기 보다는 취업 브로커와 결탁된 불법밀입국자에 가까운데 이것을 제노포비아로 부추긴 것은 언론이며 거기게 공포심을 느껴 청와대 청원에 동참한 것은 일반 국민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지 외국인을 혐오하고 인도주의와 거리가 먼 한국인이라는 일부 진보 활동가들의 주장도 틀린 것이다.
끝